전쟁이 만들고, 전쟁이 키운 녹지 않는 초콜릿

일본의 진주만 폭격이후 미국에서는 설탕 품귀 현상이 일어났다. 주요 수입국이던 필리핀이 일본군에 점령당한 데다 운송을 담당하던 하와이의 화물선이 모두 군용으로 차출됐기 때문이다.


이에 미 당국은 전쟁 중 설탕 가격 폭등을 막기 위해 수급 통제 식품으로 제일 먼저 설탕을 지정했다. 일정 수량 이상은 돈 주고도 살 수 없는 배급 품목으로 지정했던 것이다.



그런데 이러한 상황을 예측하고 기회로 활용한 인물이 있었다. 바로 '포레스트 마스(Forrest Mars)'라는 미국의 초콜릿 제조회사 사장이다.



그는 전쟁 이전부터 구상하던 사업 아이템이 하나 있었다. 그것은 '날씨가 더워도 녹지 않는 초콜릿'의 상품화였다.


제2차 세계대전 이전까지만 해도 초콜릿은 제철 과일이나 채소처럼 계절상품 성격이 강했다. 여름만 되면 초콜릿 매출이 뚝 떨어졌는데, 이는 개인은 물론 초콜릿 상점에도 냉방시설이 없어 초콜릿이 모두 녹아 내렸기 때문이다. 전선의 병사들에게도 주머니에서 줄줄 녹는 초콜릿은 골칫덩어리였다.


이러한 문제점들을 보완한 "입 안에서는 녹지만 손에서는 녹지 않는 초콜릿"을 만들겠다는 것이 그의 목표였다.



마스는 녹지 않는 초콜릿의 아이디어를 스페인 내전에서 얻었다.

업무차 스페인에 갔다가 병사들이 딱딱한 설탕으로 껍질을 씌운 작은 구슬 형태의 초콜릿을 먹는 것을 보고 영감을 얻었다.


이를 위해 마스는 초콜릿을 사업화하는데 필요한 파트너를 찾아나섰다.


단순히 자금만 대는 물주가 아니었다. 유럽 전역으로 전선이 확대되고, 아시아에도 전쟁의 기운이 감돌았기에 조만간 초콜릿 원료인 카카오와 설탕이 품귀 현상을 빚게 될 것으로 예측했다. 때문에 원료를 안정적으로 공급해 줄 수 있는 파트너를 찾아야 했다.


이때 마스와 손잡은 사람이 당시 허쉬 초콜릿 경영자의 아들이었던 '브루스 머리(Bruce Murrie)'였다.



머리가 20%의 지분 참여를 결정하면서 두 사람은 각자의 이름에 한 글자씩을 따서 M&M’S라는 회사를 만들었고, 1941년 봄부터는 초콜릿을 사탕으로 코팅한 상품을 생산하기 시작했다.



그리고 사업을 시작한 지 몇 개월 지나지 않은 1941년 12월 7일, 일본이 진주만을 기습 공격했다.



미국이 제2차 세계대전에 본격적으로 뛰어들게 된 것인데, 그 결과 전쟁물자 조달을 위해 배급 제도가 시행됐고 최초의 통제 품목이 초콜릿의 원료인 설탕이었다.


포레스트 마스가 예측했던 대로 원료 수급에 차질이 생긴 것이다. 하지만 또 한 번 위기가 기회로 작용했다. 원료인 설탕을 배급받지 못하는 다른 초콜릿 회사는 제품을 제대로 생산할 수 없었던 반면에 원료를 안정적으로 공급해 줄 허쉬 초콜릿이 있었던 M&M’S는 다른 여러 초콜릿 업체를 물리치고 군수물자 납품업체로 지정됐다.


안은 초콜릿이지만 표면은 사탕으로 코팅했기에 태평양 전선처럼 날씨가 무더운 곳에서 싸우는 병사들의 전투복 주머니 속에서도 M&M’S는 녹지 않았다.



군 당국은 곧 이 초콜릿을 병사들의 야전 전투식량 메뉴에도 포함시켰고, M&M’S는 실질적으로 군납 독점권을 거머쥐게 된다. 이후 공장에서 생산되는 M&M’S 초콜릿은 모두 군용으로 납품됐다. 하지만 초콜릿을 사 먹을 수 없는 민간인을 대상으로도 광고를 내보냈다.



"M&M’S 초콜릿은 100% 전선에 제공합니다." 애국심을 고취하는 광고였다.


새알 초콜릿 M&M’S는 스페인 내전에서 아이디어를 얻어 만들어졌고, 제2차 세계대전을 계기로 급성장한 전쟁이 만들고 전쟁이 키운 초콜릿이다.



'포레스트 마스'의 사소한 아이디어도 놓치지 않는 관찰력과 미래를 내다보는 예지력이 위기를 기회로 만들었고, 이것이 현재 세계인이 사랑하는 초콜릿 M&M’S가 탄생할 수 있었던 배경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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