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AN/MILITARY 3분 매거진 2018. 8. 25. 08:00
제2차 세계대전이 끝난 지 반세기가 지났지만 히틀러라는 희대의 독재자와 나치라는 전범 집단을 긍정적으로 볼만한 요소는 전혀 없다. 왜냐하면 그들이 인류사에 끼친 악행이 쉽게 치유되기 힘들 만큼 너무나 컸기 대문이다. 독일에서조차 나치와 히틀러에 대해 언급하는 것이 금기시되고, 법적으로도 나치에 대한 모든 것이 부정될 정도이다. 하지만 한 시대를 좌지우지했던 인물과 집단이었던 만큼 이들이 개발한 무기는 지금도 국제표준이 되기도 하고, 현대전의 필수 무기가 되어버린 것들도 많다. 아래 소개되는 무기들은 나치 독일이 세계 최초로 개발한 무기들이다. 세계 최초의 로켓 독일의 '폰 브라운' 박사는 오늘날의 '토마호크 미사일'과 같은 순항 미사일의 원조 격인 'V로켓'을 만들어 낸다. 독일은 이 로켓으로 영국의 런..
MAN/MILITARY 3분 매거진 2018. 8. 4. 07:00
기발한대도 불구하고 빛을 보지 못한 상당수의 발명품은 주로 2차 세계대전 시기에 많이 볼 수 있다. 독일은 자원의 고갈과 열세를 만회하기 위한 신무기 개발을 위해서 다양한 시도를 했고, 연합군 역시 전 유럽이 전쟁터가 된 상황에서 최대한 전쟁을 조기 종결시킬 목적으로 마찬가지 시도를 했다. 빙하 군함 2차 세계대전 중 연합군과 추축군은 대서양과 태평양에 걸친 넓은 해역에서 대규모 해전을 치렀다. 하지만 군함은 그 거대한 규모 때문에라도 단기간에 건조를 할 수 없었던 것이 사실. 이 와중에 영국의 발명가인 '제프리 파이크'는 얼음으로 군함을 건조하는 아이디어를 내놓았고, 당장 해군력 보강에 관심이 컸던 영국 정부가 반응을 보였다. 그의 아이디어는 물 86%와 목재 펄프 14%로 이루어진 '파이크리트(Pyk..
3분 매거진 3분 매거진 2018. 7. 31. 08:00
1936년 6월 13일, 독일 함부르크 '블룸 플루스 보스' 조선소에서 해군 훈련함 'SSS 호르스트 베셀'진수식이 열렸다. 이날 진수식에는 당시 독일 나치당 총통이었던 '아돌프 히틀러'도 참가했다. 그리고 이곳에 빼곡히 모인 나치 당원들은 히틀러의 축사가 끝나자 모두 오른팔을 들어 나치식 경례로 히틀러에게 충성심을 보였다. 단 한 사람만 빼고 말이다. 아래 사진 속의 이 남성은 팔짱을 낀 채 불만 가득한 표정으로 연단을 바라보고 있다. 독재자 아돌프 히틀러의 극악무도한 통치가 한창이던 1936년, 독일에서 히틀러에게 경례를 하지 않는 것은 자살행위나 마찬가지였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가 이러한 행동을 보인 까닭은 무엇일까? 충실한 나치 당원이었던 그는 순수 독일인 '아우구스트 안디멧서'로 진수식 행사..
MAN/MILITARY 3분 매거진 2018. 7. 31. 07:00
제2차 세계대전 당시, 미국은 연합국에 총 501억 달러 규모의 군수 물자를 지원했다. 현재 가치로는 최소한 6,590억 달러(약 750조 원)에 이르는 막대한 물자였는데, 지원 목록은 온갖 품목을 망라했다. 군용기와 전차 등 무기류가 절반 이상이었고, 원유와 원자재, 육류를 비롯한 식량과 의복까지 그야말로 군수품 일체가 미국과 동맹군으로 싸우는 연합국들에게 넘어갔다. 이러한 엄청난 양의 물자가 지원될 수 있었던 것은 1941년 3월 11일에 발효된 미국의 '무기대여법(Lend and Lease Act)'에 의해서였다. 이 법이 발효되기까지는 미국내 반발도 만만치 않았다. 유럽의 전쟁에 끼어들 필요가 없다며 전통적인 고립주의로 돌아가자는 반대 의견으로 하원에서는 단 한 표 차이로 법이 통과됐을 정도다. ..
3분 매거진 3분 매거진 2018. 7. 10. 07:00
베를린 장벽이 무너지고 독일이 하나로 통일된지 27년... 이전까지만 해도 독일은 우리나라처럼 분단국가였다. 독일은 2차 세계대전의 패전으로 인해 '서독(자본주의)'과 '동독(사회주의)'으로 나뉘게 된다. 독일의 수도인 베를린에는 서쪽은 서독이, 동쪽은 동독이 통치를 하고 있었는데 베를린 장벽은 이름 그대로 베를린에만 설치된 장벽이었다. 이처럼 동독과 서독은 나뉘어 있었지만 어느 정도 민간교류가 가능했다. 동독에서는 서독의 TV프로그램도 시청할 수 있는 정도였다. 그리고 1970년, 정상회담 이후 70차례가 넘는 공식 회담을 통해 1989년 베를린 장벽이 무너지면서 하나로 뭉친 독일... 그런데 여기에 재밌는 사실이 존재한다. 1989년 11월 9일, 당시 동독의 사회주의 통일당 선전담당 비서였던 '권터..
MAN/MILITARY 3분 매거진 2018. 7. 9. 06:00
초콜릿은 제2차 세계대전 때부터 미군 병사들에게 전투식량으로 지급됐다. 정기적으로 초콜릿을 보급한 데는 두 가지 이유가 있었다. 달콤한 후식을 제공함으로써 전투에 지친 병사들의 사기를 높이자는 것과 초콜릿이 고열량의 식품인 만큼 작전 중의 병사에게 빠르고 간편하게 에너지를 공급한다는 이유였다. 이처럼 병사에게 지급되는 초콜릿은 사기진작과 고열량 에너지원이라는 장점이 있지만 한 가지 문제점도 안고 있었다. 맛있기 때문에 순식간에 다 먹어치운다는 점이다. 다시 말해 위급한 상황에서 생존을 위해 아껴 먹어야 할 생존 식량으로는 어울리지 않는다. 제2차 세계대전이 일어나기 두 해 전인 1937년, 병참 장교였던 '폴 로간' 대령은 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군납업체였던 허쉬 초콜릿 회사를 찾아가 병사들의 전투식량..
MAN/MILITARY 3분 매거진 2018. 7. 7. 08:00
세계에서 가장 큰 전함이란 타이틀을 가진 '야마토' 전함은 일본 해군이 진주만 기습 직전에 만들어낸 세계 최대 크기의 전함이었다. 길이만 260m가 넘고 만재 배수량은 7만 톤을 넘는 대형 함선인데다 18.1인치에 달하는 거대한 주포는 함선에 장착된 가장 큰 대포로 기네스북에 올라있으며 이 기록은 아직도 깨지지 않고 있다. 당시 야마토함은 200문이 넘는 대공포와 강력한 장갑 등 막강한 방어력을 갖추고 있어 '바다 위의 요새' 역할을 충실히 할 수 있을 것으로 기대됐다. 여기에 각종 최신 레이더와 광학장비로 우수한 탐지능력까지 갖추면서 야마토함은 당대 일본의 기술력과 자본력이 총집결한, 수치상으로는 최고의 함선이었던 셈이다. 하지만 정작 이 거대한 기함은 전쟁 말기까지 전투에는 거의 나서지 못했다. 전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