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트로 전락한 군함이 일본의 전설이 된 이유

세계에서 가장 큰 전함이란 타이틀을 가진 '야마토' 전함은 일본 해군이 진주만 기습 직전에 만들어낸 세계 최대 크기의 전함이었다.



길이만 260m가 넘고 만재 배수량은 7만 톤을 넘는 대형 함선인데다 18.1인치에 달하는 거대한 주포는 함선에 장착된 가장 큰 대포로 기네스북에 올라있으며 이 기록은 아직도 깨지지 않고 있다.



당시 야마토함은 200문이 넘는 대공포와 강력한 장갑 등 막강한 방어력을 갖추고 있어 '바다 위의 요새' 역할을 충실히 할 수 있을 것으로 기대됐다. 여기에 각종 최신 레이더와 광학장비로 우수한 탐지능력까지 갖추면서 야마토함은 당대 일본의 기술력과 자본력이 총집결한, 수치상으로는 최고의 함선이었던 셈이다.



하지만 정작 이 거대한 기함은 전쟁 말기까지 전투에는 거의 나서지 못했다.


전쟁 내내 함대 사령관들이 방문해 연회와 선상파티가 이어졌고, 일본 최고 호텔 주방장들로 구성된 취사병들이 매일 호화로운 음식을 대접했다. 당시 일본인들도 이런 모습을 풍자해 '야마토 호텔'이라는 치욕적인 별명까지 붙여줬다.



1대 제작 가격이 일본 전체 국민 총생산(GDP)의 1% 이상을 차지한 값비싼 전함이었던 야마토함이 전투에는 쓰이지도 못하고 이렇게 초호화 요트가 돼버린 이유가 있었다.



1. 상대적으로 느리고 둔중해 해상 전력으로 써먹기 어려웠다.



야마토 전함은 엔진 능력에 비해 몸집이 어마어마하게 큰 배였고, 온갖 위락시설까지 다 갖춘 배였기 때문에 속도를 아무리 빨리 내도 27노트 정도 수준이었다. 이미 30노트 이상의 함선들이 전투를 치르고 있었던 태평양 전선에서는 너무 느려서 금방 적 함대에 포위당하기 십상이었다.



2. 움직일 때마다 연료 소비가 엄청났다.



덩치가 워낙 커서 기름까지 많이 먹었기 때문에 전쟁 말기 석유 보급이 원활치 않게 되자 아예 항구에 정박한 채 선상파티용 유람선으로 전락하고 말았다. 오히려 야마토 전함에 적재된 기름을 다른 소형 함선에 나눠주는 지경에 이르렀었다



3. 기네스북에 오른 거대한 주포도 문제였다.



3개의 포신이 나란히 있는 3연장 주포는 당시 일본에서는 처음 도입된 포신으로 해군에서 많이 운용해본 적이 없는 무기였다. 또 포신끼리 사이가 좁다보니 포탄 사이에 간섭력이 심하게 작용해 포를 쏘면 어디로 날아갈지 예측할 수가 없었다. 당연히 명중률은 형편없었고 이것이 실전에 투입되지 못한 가장 큰 이유였다.



4. 일본의 상징이라고 할 수 있는 야마토가 격침되는 경우를 두려워했다.



그럼에도 당시 일본 해군의 상징이다 보니 전쟁 말기까지 야마토의 수병들은 가장 좋은 대우를 받았다. 본국에 물자가 떨어져 식량이 부족한 상황에서도 밥을 굶는 일이 없었다.


전쟁 말기, 야마토에 근무하던 한 수병이 "저녁에 카레라이스가 나와 맛있게 먹었는데 내가 지금 이걸 먹고 있어도 되는지 모르겠다."는 수기를 남겼을 정도다.



이러한 무용지물 전함이었던 야마토의 최후는 비참했다.



1945년 오키나와로 미군이 몰려오자 야마토 전함은 마지막 임무를 부여받았다.

오키나와 해안에 도달해 고정 포대 역할을 하며 장렬히 전사하라는 것. 패전이 확실시된 상황에서 국민들에게 면목이 없으니 자살을 강요받은 셈이었다. 적재된 기름도 오키나와까지 편도로 갈 수준만 채워졌다고 한다.



결국 미군의 표적이 된 야마토 전함은 엄청난 폭격을 받았으며 끝내 거대한 버섯구름을 만들며 폭발하고 말았다. 수치로 나오는 스펙보다 실전 능력이 훨씬 중요하다는 큰 교훈을 남긴 채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졌다. 이러한 야마토 전함이 만능의 최강 전함으로 각인되는 데에는 이유가 있다.



일본인의 집단 기억이 원하기 때문이다. 비록 패전했어도 인류 역사상 최강의 전함을 만들고 운영했다는 자부심이 전함 야마토를 전설로 만들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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