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한말, 대한 제국이 구입한 최초의 근대식 함선

조선 고종 때인 1866년, 당시 '흥선 대원군'은 천주교를 금지하며, 프랑스 신부와 조선인 천주교 신자 수천 명을 처형했다.



이때 가까스로 살아남은 프랑스 선교사 '리델'이 중국으로 도망쳐 이 소식을 프랑스군에게 알렸고, 이에 프랑스군 함대 사령관인 '로즈'가 7척의 함선과 1,000여 명의 병력을 이끌고, 강화도를 침략했다.



당시 프랑스군은 화력이 좋은 신식 무기로 무장했기 때문에 조선군보다 전력이 훨씬 강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강화도로 몰래 건너간 조선군은 '삼랑성(정족 산성)'에 진을 치고, 공격해 오는 프랑스군을 물리쳤다. 이 전투에서 패한 프랑스군은 더 이상 강화도를 점거할 의지를 잃어버리고 철수했다.


병인양요


그리고 1871년, 이번에는 미국에서 조선 정부와 강제로 통상조약을 맺기 위해 5척의 군함에 병력 1,230명을 이끌고 강화해협에 들어섰다. 이에 조선의 강화 수병이 맹렬한 포격을 퍼붓자 피차간에 치열한 포격전이 벌어졌고, 이 싸움으로 조선군은 53명이 전사하고, 미군 측도 3명이 전사, 10여 명이 부상당했다.


다음날에는 조선군이 미 군함을 야습하여 미군 선박을 물리치자, 미국 측도 더 이상의 공격이 무모함을 깨닫고, 불법 침입한 우리 해역에서 물러갔다.


↑ 신미양요


이처럼 2번의 전투가 모두 조선의 승리로 끝나면서 자신감을 얻은 '흥선대원군'은 쇄국정책을 더 강화해 나갔으나 그도 무시할 수 없는 것이 하나 있었다. 바로 서양의 최신식 군함이 갖춘 어마어마한 해상 전투력이었다.


이에 흥선대원군은 전국의 선박 장인들을 불러 모아 조선판 군함 제작을 강행했다. 그러나 아무 기술도 보유하지 못한 조선이 군함을 만든다는 것은 시작부터 불가능한 일이었다.


↑ 해군력이 곧 국력으로 여겨질 만큼, 근대 시기 강대국들의 군함은 최신 기술 그 자체였다.


하지만 군함의 위력을 실감했던 조선은 군함에 대한 열망을 포기할 수 없었고, 마침내 군함을 손에 넣게 되는데...



1903년 4월 15일, 대한제국 최초의 군함인 '양무호'가 인천 앞바다에 그 멋진 위용을 자랑하며 등장했다. 3,436톤의 무지막지한 크기에 2개의 대포도 탑재되어 있었고, 72명의 승무원이 탈 수 있을 정도의 엄청난 규모를 자랑했다.


이 군함은 자체 제작의 어려움을 느낀 대한제국 정부가 거금을 들여 일본에서 사들인 배였다. 그런데 당시 조선을 집어삼키기 위해 온갖 술책을 벌이던 일본이 과연 조선에 제대로 된 배를 제대로 된 가격에 판매했을까?



이 배는 사실 건조된 지 20년도 넘어 이미 고물에 가까웠고, 원래 용도도 군함이 아닌 석탄 운반선이었다.


↑ 양무함


1881년 만들어진 배를 일본이 영국으로부터 구매하여 9년 동안 쓸 만큼 쓰고, 약간의 개조 후 조선에게 판매했던 것이다. 여기에 또 다른 문제는 판매 가격이었다.


일본은 영국으로부터 '25만 엔(당시 가격 약 40만 원)'에 구입했던 배를 9년이나 사용해놓고, '대한 제국'에게는 무려 '55만 엔(당시 가격 약 110만 원)'에 판매했는데, 이 금액은 대한제국 국방비의 30%, 전체 국가 예산 10%에 해당하는 어마어마했던 금액이었다. 이는 대한 제국이 군함에 대한 열망이 얼마나 컸는지 짐작하게 해주는 부분이다.


↑ 양무함의 초대 함장 '신순성'


그렇다면 이렇게 엄청난 돈을 주고 구매한 군함을 대한 제국은 과연 얼마나 활용하였을까?


이 군함이 전투를 위해 출격했던 횟수는 총 0회였다. 배는 구매했지만 일본이 항해 기술을 제대로 전수해주지 않았을 뿐만 아니라, 1895년 '강화 해군 학교'가 청일전쟁의 영향으로 폐지되고, 해군 인적자원이 없었던 상황에서 덜컥 군함부터 구입해버린 것이다. 게다가 항구에 정박시켜 놓은 것만으로도 엄청난 유지비가 들었던 양무호는 돈 먹는 고물이 따로 없었다.


대한제국의 '황성신문'은 1903년 6월 1일자 신문에 양무호에 대해 거세게 비판의 날을 세웠다.

"한 명의 수병도 없는 상황에서 군함부터 사버려 재정의 낭비를 하면 어쩌자는 말인가?"


그리고, 을사늑약 이후에는 도로 화물선으로 개조되어 사용되다가 화물 이송 중 침몰되면서 대한제국 최초의 군함 '양무호'는 그렇게 역사 속으로 사라졌다.


↑ 을사늑약 체결 직후 한일 수뇌부의 기념촬영


그런데! 대한 제국군의 군함은 양무호가 다가 아니었다. 양무호를 인수하고 얼마 지나지 않아 일본 '가와사키 조선소'를 통해 또다시 배를 사들였으니 이름하여 '광제호'였다.


↑ 광제함


조선의 요구로 만들어졌던 이 배는 중고가 아니라 이제 막 제작되었던 신식 군함이었고, 그에 걸맞은 최신 통신 장비까지 갖추고 있었는데, 즉 진짜 군함이었던 것이다. 그러나 이 배는 양무호보다 더 치욕스러웠다.



을사늑약 이후 일본 고위 관리의 개인 이동선으로 쓰이는가 하면, 일제강점기에는 일본의 무역선으로 그리고 광복 후에는 일본인들의 일본 귀국선으로 사용됐다. 이렇게 한 나라의 군함이, 조국을 유린했던 침략자들의 안전한 귀국을 위해 쓰였었을 만큼 누구를 위한 배였는지조차 알 수 없던 것이 우리 최초 군함의 운명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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