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밥 접시에 같은 종류의 초밥을 2개씩 올려놓는 이유

회전초밥 전문점에는 왜 항상 같은 종류의 초밥을 2개씩 올려놓을까?



별 의미가 없어 보이지만 접시에 놓인 두 개의 초밥은 일본이 태평양 전쟁에 패전한 결과이다.



당연한 결과지만 패전국 일본은 종전 이후 극심한 식량난을 겪었다.


전쟁이 끝난 후 미국을 중심으로 한 연합국은 일본의 전후 복구에 대해 입장을 분명히 밝혔다. 일본 국민이 겪는 경제적 어려움과 고통은 일본 자신이 저지른 행위에 대한 결과이며, 연합국은 일본 경제의 복구에 대해 부담을 지지 않는다는 것이다.



1945년 11월, 연합국 최고사령관 맥아더는 일본 점령 및 관리를 위한 기본 지령을 발표하면서 "일본이 특정 수준의 생활을 유지하는 데 (연합국은) 아무런 의무도 지지 않는다."고 밝혔다.


부족한 곡식을 조선과 타이완·태국·인도 등에서 강압적으로 조달했던 일본이었으니 식민지 독립 이후 곡식의 약 3분의 1이 모자랐다. 세 명 중 두 명 분의 쌀밖에 없었던 것이다.



태평양 전쟁이 끝난 후 일본의 식량 배급


주요 단백질 공급원이었던 생선도 마찬가지였다. 종전 후 어선의 부족과 일본 연근해에 설치된 기뢰 등으로 조업이 원활지 못했고, 부족한 어획량을 대신해 주로 민물 생선과 조개류에 의존했다.


급기야 양식이 모자라 굶어 죽는 사람이 생길 정도로 상황이 심각해졌고, 이에 1947년 7월 당시 일본의 '카타야마' 총리는 식량난 타개책의 하나로 음식영업 긴급조치령을 발표했다.


내용은 여관과 다방 그리고 배급 허가권을 취급하는 식당 이외에서는 음식점 영업을 할 수 없다는 것이다. 식량 절약을 위해 일반인의 외식을 금한다는 조치였다.


↑ 식량난 해결을 요구하는 일본인들



이러한 긴급조치령으로 인해 수많은 음식점이 문을 닫아야 했는데, 초밥 전문점도 예외가 아니었다. 초밥집을 운영하던 사람들은 비상이 걸렸고, 이때 누군가 아이디어를 냈다.


초밥을 만들어 팔 것이 아니라 쌀을 가져오는 사람한테 수수료를 받고 초밥을 만들어주면 된다는 것이다.


어차피 배급받은 쌀을 가져온 사람한테 초밥을 만들어주는 것이니 별도로 양식을 과소비하는 것도 아니므로 법을 만든 취지에도 어긋나지 않고, 초밥 전문점 입장에서는 초밥 만들 때 들어가는 재료 값과 초밥 만드는 요리사의 인건비를 수수료 형식으로 받으면 문제 될 것이 없다는 것이다.


↑ 태평양 전쟁이 끝난 후 일본의 식량 배급


음식을 만들어 파는 것이 아니라 손님이 가져온 쌀로 밥을 짓고 거기에 생선을 얹어서 다시 손님에게 돌려주는 것이니 요식업이 아니라 위탁가공업에 해당하고, 따라서 음식영업 긴급조치령에도 저촉되지 않는다는 논리다.


논리도 그럴듯했고 초밥 전문점의 생계도 고려하면서 일반인의 외식 욕구도 충족해야 했기에 도쿄 시청에서 건의를 받아들였다.


다만, 제한 조건을 만들었다. 한 사람당 쌀 한 홉으로 초밥 10개까지만 교환을 허가했다. 쌀 한 홉이면 대략 밥 한 그릇이고 이것으로 초밥을 만들면 지금 크기로 만들어 10개 정도의 초밥이 만들어진다. 종전 전까지 다양한 종류의 초밥이 있었지만, 전후 초밥이 현재의 모습과 크기로 통일된 배경이다.



이 무렵 일본은 생선도 모자라 초밥 하나하나를 다른 생선으로 만들 수가 없었다. 그래서 같은 종류의 재료로 초밥 두 개씩을 한 접시에 담아 제공했다.


다섯 가지 재료로 10개의 초밥을 완성했던 것인데 이때의 습관이 지금까지 이어져 접시 하나에 같은 종류의 초밥 두 개를 올려서 서비스하는 것이 정형화됐다.


 

참고로 우리나라는 딱히 지켜지지 않지만, 초밥 1인분을 시키면 대략 10개 정도가 나오는 것도 이때 생긴 관습이라고 한다.



접시에 담긴 초밥 두 개, 제2차 세계대전 패전국 일본의 평범한 시민들이 겪어야 했던 고통과 시련 극복의 결과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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