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의 '기병 대대'는 어디로 사라졌을까?

'말'이 인간의 교통수단으로 이용되었던 것은 약 1만 년 전으로 알려져 있다. 약 200년 전, 증기 기관으로 움직이는 열차가 등장하기 전까지 이보다 빠른 이동 수단이 없었을 만큼 오랜 기간 애용되었고, 그것은 군도 마찬가지였다.



기동력이 뛰어난 기병대는 지금으로부터 약 100년 전인 제1차 대전 당시만 해도 전선 돌파의 주역으로 맹활약하였다.


↑ 제1차 세계대전 당시 영국군의 기병여단 '스캇츠 그레이'


현재는 기계화 부대의 등장으로 전선에서 물러났지만 지금도 산간오지의 산악부대 지원이나 의전 행사를 위해 말을 군용으로 사용하는 국가들이 많다. 하지만 말을 이용한 부대중 전투병과인 '기병대'보다 강렬한 인상을 주는 경우는 없다. 따라서 현재 기마 의장대를 운용하는 나라의 경우도 대부분 예전의 기병대를 모티브로 하고 있다.



그런데 많이 알려지지 않은 사실이지만 우리 국군에게도 기병대가 존재했었다. 1948년 국군 창설 당시에 '독립 기갑연대(현 수도기계화사단 기갑여단)'에는 기마 300필을 보유한 '기병대대'가 있었는데 엄연한 전투부대였다.


↑ 현 수도기계화사단


당시 기갑연대는 장갑대대, 기병대대, 도보대대로 이루어진 국군 유일의 기동타격부대였는데, 6.25전쟁이 발발하자 장갑대대와 도보대대가 일찍 산화한 반면 기병대대는 후퇴 당시에도 편제를 유지하였고, 또한 많은 전과를 올렸다.



서울을 점령한 북한군은 1950년 7월이 되자 전열을 가다듬어 한강 도하를 감행했다. 이때 국군은 개전 초에 무너진 부대들을 모아 '시흥전투사령부'를 급조하여 방어에 나섰다.



여기에 기병대대도 포함되었는데 유일하게 대오를 갖춘 부대였다. 기병대대는 '장철부' 대대장의 지휘 하에 천호동에서 압구정동에 이르는 정면을 방어하였으며, 최후의 철수 부대로 남아 후퇴하는 아군을 마지막까지 엄호하였다.



그들의 놀라운 활약상은 미군 전사에도 잘 나타나 있다. 7월 초순, 구미 부근에서 미 제24사단 63포병대대가 북괴군에 포위되어 몰살 당 할 위험에 처했을 때, 홀연히 나타난 기병대대가 적의 배후를 급습하여 이들을 극적으로 구출했다.


이후 기병대대는 북진에도 참여했는데 아쉽게도 1.4후퇴 후 더 이상의 전투 기록 없이 1951년 7월 해체되었다.


6.25 전쟁이 끝나고, 국군은 1972년부터 1982년까지 동부전선 산간의 물자 수송용으로 200여필의 조랑말을 보유한 '타마부대'를 운용했고, 현재는 의전 및 행사용으로 육군사관학교에 20여필의 말을 보유한 '군마대'가 존재한다.


↑ 육군사관학교 군마대


한편 6.25전쟁에도 참전했던 미 육군의 '제1기병사단'은 서부 개척시대 기병대의 전통을 승계하여 1921년 창설되었다. 지금은 최정예 기갑부대지만 기병이라는 부대명은 절대로 바꾸지 않고 자랑스럽게 유지하고 있다. 특히 전혀 관련이 없는 항공대까지 '항공 기병여단(Air Cavalry Brigade)'이라 할 정도다.


↑ 미 제1기병사단



우리도 자랑스러운 전과를 남긴 기병대대가 우리 군에도 있었다는 사실을 기념하기 위해 이런 방식으로 전통을 이어가는 것은 어떨까 생각된다.


예를 들어 기병대대가 처음 속했던 수도기계화사단의 예하대대 중 하나를 기병대대로 칭하여 부대의 역사를 승계시키는 것도 좋은 방법이라 할 수 있을 것이다. 승계하지 않은 역사는 결국 사라지고, 사라진 역사는 다시 회복하기 힘들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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