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 항모에 선적된 헬기가 바다에 수장된 이유

1950년대에 미 공군에서 취역한 'O-1A 경항공기'는 1974년까지 미군의 연락·정찰·관측·포사격 등 군사 분야에서 광범위하게 사용되었다.


O-1A bird dog



이 항공기는 냉전 시절 총 3,431기가 제작되어 수많은 전장을 누비며 숱한 진기록을 세웠는데, 그 중에서도 오늘 소개할 내용은 월남 패망 당시 2인승의 이 작은 경비행기에 월남 공군 일가족 7 명이 탑승하여 무작정 바다로 나왔다가 미 항모를 만나 기적적으로 살아난 이야기다.


↑ 우리 공군의 O-1A bird dog


1974년 4월 29일, 남부 월남의 수도 '사이곤 시(현재의 호치민)'가 함락되기 하루 전날, 월남 남부 '콘손섬'에서 월남 공군 조종사 '부앙 리' 소령이 조종하는 O-1A 기가 이륙했다.



연료는 가득 채웠지만 도착지는 어느 곳인지 정확히 모르는, 막연하고 위험한 출발이었다. 목표는 풍문 수준의 정보로, 월남 근해의 미 해군 항공모함이었다. 그리고 이 막연한 월남 탈출 비행에 그와 그의 아내, 그리고 다섯 명의 자녀 등 총 7명이 동행하고 있었다.


소령 계급으로 보아 그는 아직 젊고 아이들도 어리고 작다고 생각되지만 앞뒤 2인석인 O-1A 기에 어떻게 그렇게 많은 인원이 탑승했는지는 정말 불가사의한 일이었다.



어찌 됐든 해상으로 나오다가 월맹군의 대공사격까지 받은 이 0-1A 기는 해상에서 여러 시간을 헤매다가 기적적으로 미 항모 '미드웨이 함'을 만났고, 부앙 리 소령은 항모 주위를 계속 맴돌았다.



이미 이 항모에는 월남에서 탈출한 월남 군 '후에이(UH-1)' 헬기 여러 대가 갑판에 선적되어 있었다.


부앙 리 소령은 갑판 위를 두어 번 저공으로 스쳐가며 아이들이 가득 탄 기체 안을 항모의 함교 지휘관들에게 보이게 한 후 긴급 전통문을 투하했다.




연료도 얼마 안 남았고 아이들도 많이 있으니 긴급 착륙하게 해달라는 요청이었다.

그렇지 않아도 항모 상공을 맴도는 O-1A 기에 많은 아이들이 탑승한 사실을 보고 놀랐던 함장 '로렌스 챔버스' 대령은 갑판에 도착했던 후에이 헬리콥터 여러 대를 바다로 밀어 버리고 갑판 위에 그가 착륙할 공간을 만들었다.



※ 당시 미 함대의 정확한 위치를 알고 있었던 월남 공군기들도 있었던 듯하다.

미 해군 함대로 도망친 월남 헬리콥터 한 대에 공군 참모총장이며, 수상으로 정권 실세였던 '구엔 카오 키' 소장도 타고 있었는데, 그는 며칠 전까지 월맹군의 맹공에 국외 탈출하는 사람이 많아지자 "도망하는 자들은 비겁자들이다." 고 호언하던 사람이었다.


O-1A 기가 비록 경비행기지만 항모에 착륙하도록 설계된 것도 아니고, 부앙 리 소령조차 항모에 착륙하는 훈련을 받은 일이 한 번도 없었지만 기체는 기적적으로 안전하게 착륙했다. 덕분에 아이들 다섯 명과 부부는 무사히 미국으로 올 수 있었다.



그리고 이 기적의 O-1A 기도 미국으로 왔다. 현재는 플로리다 '펜사콜라' 해군 기지에 있는 국립 해군 항공 박물관에 전시 중이다.


우리나라 국군에도 O-1A 기에 대한 일화는 많은데, 위와 같이 인명구조 사례는 없다. 우리나라 일화 중 50년대에 있었던 일이다.



한국의 한 육군 조종사가 양심을 버린 채 0-1A 기를 몰고 대한 해협을 건너다가 일본 산악지대에 불시착했다. 그는 0-1A 기의 무전기를 뜯어 마을로 내려와 팔려고 하다가 경찰에 체포되었다.



당시 살기 힘든 한국을 떠나 일본으로 밀항하는 사람들이 많았는데, 그는 바로 항공 밀항을 시도한 것이었다. 한국으로 강제 송환이 확실시되자 그는 조총련을 통해 월북해버렸다. 그러나 몇 년 뒤 밀봉교육을 받고 남파되었다가 결국은 체포된 사건도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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