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직 대만에 만 제공됐던 미국의 전략 자산

냉전이 한창이던 시절 지금은 상상이 가지 않지만 대만과 미국의 관계는 상당히 밀접한 관계였다. 당시 한국 공군이 'F-86'이라는 구식기를 애지중지하며 사용할 때 대만 공군은 미국이 제공한 최신식 'F-104' 전투기를 운용했다.


대한민국 공군이 운용하던 F-86


↑ F-104



그리고 1961년에는 중국 첩보 활동을 위한 미국의 전략 자산 'U-2 정찰기'가 대만으로 양도되었다. 이후 U-2기의 운용을 위해 미국의 정비 및 첩보 전문가들이 대만의 '타요유안' 기지로 파견되었고, 6명의 대만 조종사와 정비 요원이 미국으로 파견됐다.


↑ U-2기 조종 훈련을 받은 대만 조종사는 15년간 총 28명에 달한다.


이렇게 탄생한 대만 U-2기 부대는 1961년부터 1974년까지 13년간 중국 본토 상공에 102회 침투하는 비밀 출격을 했다.


넓은 중국 대륙의 구석구석을 파고들기 위해 대만 첩보기들은 때로는 베트남 상공을, 때로는 북한 상공을 경유하는 침투 비행을 했고, 가끔 중·소 국경을 넘어 소련 영토에서 첩보를 수집해 오는 위험한 임무도 수행했다.


대만 공군과 미 CIA가 합동으로 추진했던 이 비밀 작전에서 수많은 희생자가 발생했다. 대만의 첩보활동에 속수무책으로 당하던 중국이 소련의 'SAM 미사일'을 복제, 개발하면서 총 5대의 대만 U-2기를 격추시켰기 때문이다.



중국에 격추된 5대의 U-2기 대만 조종사 중 세 명이 전사했다. 다른 두 명은 고공에서 격추되는 U-2기에서 기적적으로 탈출하여 목숨을 건졌으나 중국의 포로가 되었다.


U-2기는 공기가 희박한 상공을 날 수 있게 설계 되었지만 내구성이 약하고, 조종하기도 까다로워서 격추된 것 말고도 훈련 또는 중국 연안 정찰 비행 중 7명의 대만 조종사가 목숨을 잃었다. 미국이 순차적으로 공급했던 U-2기는 모두 19기였었는데 이중 11기를 상실했던 것이다.


↑ 이렇게 촬영한 사진 정보는 모두 오키나와 미군 기지로 전달됐고, 대만에는 아무런 정보가 공개되지 않았다. 거듭된 대만의 항의로 60년대 말부터는 첩보 비행의 정보와 판독 기술을 대만에 제공하기 시작했다.



중국 상공에서 격추된 최초의 대만 조종사는 1963년 11월 1일 출격했다가 격추된 '예 창티' 소령이다. 그는 중국 북서부 지방의 중국 핵 실험장을 정탐하다가 격추되었다. 세 발의 'SAM 미사일'이 그에게 발사되었고, 그가 정신을 차린 곳은 중국의 한 병원이었다.


이후 1965년 1월 10일, '장 리이' 소령이 조종하는 대만 U-2기가 내몽골에서 SAM 미사일에 격추되었다.


↑ 추락한 대만의 U-2 기체


두 사람은 중국에서 5년간의 형을 살고 사상 개조 사업이라는 명목으로 집단 농장에 배치됐다. 그곳의 삶은 가난과 노동의 연속이었다. 더구나 수형 생활 중 '문화 혁명'이 일어나자 홍위병들에게 지독한 학대와 수모를 당해야 했다.


한편 대만은 두 조종사의 운명이나 행방을 알아낼 수가 없었다. 중국이 아무런 정보를 공개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결국 고심하던 대만 공군은 1967년 두 조종사를 전사 처리하고 가족들에게 연금을 지급했다. 그리고 중국이 개방 개혁의 길로 들어섰던 1982년 11월 10일, 갖은 고생과 수모를 겪어야 했던 두 사람은 홍콩으로 추방된다.



이후 두 사람을 전사 처리했던 대만은 이들의 생존 사실을 확인하고서도 본국으로의 귀국을 허락하지 않았다. 이들이 중국군에 적극 협조했고, 공산주의자로 세뇌되었다는 이유에서였다. 그러나 미국 CIA와 여러 정치 단체에서 구명 운동과 압력이 들어가자 할 수없이 귀국을 허락했다.


중국의 U-2기 요격 방법이 발전하고, 피해가 늘어나자 중국 본토에 대한 첩보 비행은 1967년도부터 중단되었다. 그러나 대만의 U-2기는 중국 해안 루트를  따라가며 측방에서 중국 연안 지방을 엿보는 작전 비행은 1974년까지 계속됐다.



그리고 1974년, 2대의 U-2기가 대만을 떠나 미국으로 반납 비행을 하는 것을 마지막으로 대만 공군 U-2기들의 임무는 종료되었다.



최초로 격추된 조종사 '예 창티'는 푸대접하던 조국에게 염증을 느껴 대만을 떠나 미국으로 이주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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